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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R&D)이라고 하면, 미래 기술이나 새로운 물질 등 현실에 없는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현실이 없다면 미래 역시 존재할 수 없는 법. 이 당연한 명제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 국민 생활과 안전에 밀접한 문제를 주제로 해결방안을 찾는 현실 연구들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의학과 임태호 교수의 시선 역시 현실을 향해 있다.

글. 미디어전략센터

 

메르스로 절감한 의료장비 개발의 필요성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동문으로 2003년부터 모교 응급의학교실 교수로 재직해온 임태호 교수는 응급의료인으로서 수많은 환자를 진료했고, 119 구급대원들과도 꾸준히 소통해왔다. 급박한 의료 현장의 중심에서 그가 절감한 것은 보다 나은 의료장비 개발의 필요성이었다. 특히 2015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계기로 임 교수는 소독기 개발에 주목하게 됐다.

대한민국의 메르스 최종 사망률은 20.4%였다. 다섯 명이 걸리면 한 명은 사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전염병이었다. 위험성이 큰 만큼 의료현장에서의 방역은 절대적이었다. 환자가 진료실에 다녀갈 때마다 의료진은 진료실 전체 공간을 손으로 닦아가며 소독해야 했다. 전염병 사태의 최전선에서 분투하던 의료진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부담이었다. 외국산 소독제와 장비는 너무 고가여서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고, 국산 장비 중에는 검증된 것이 없었다. 다행히 메르스는 크게 확산하지 않고 7개월 후에 종식됐지만 임태호 교수는 안도할 수 없었다.

“2003년에 사스(SARS), 2009년에 신종플루, 2015년에 메르스. 이렇게 감염병은 일정 주기로 계속 우리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저는 메르스를 겪고 나서 5년 정도 뒤에 또 다른 감염병 이슈가 있으리라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번에도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로 환자들을 맞는다면, 환자도 의료진도 모두 견딜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공포와 염려가 연구를 시작한 가장 큰 동력이었습니다.”

임태호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 감염병 대응을 위한 공간 살균소독기와 살균액 개발의 필요성을 개진했고 ‘국민생활연구사업’의 연구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국민생활연구는 과학기술로 국민들의 실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개발(R&D) 분야다. 임 교수는 해외 제품보다 성능은 우월하면서 가격은 저렴한 국산 제품 개발을 목표로 연구에 착수했다. 설계와 소독약 개발을 위해 기계공학과, 화학과 교수진에게 적극적으로 자문을 구했고, 산학협력단과 긴밀히 협력하며 연구를 구체화해 나갔다. 임 교수는 그렇게 5년간의 연구 검증을 거쳐 2020년 6월, 공간·표면 살균소독기 ‘플라크린(PlaClinⓇ)’ 개발 및 양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플라크린은 과산화수소를 기반으로 제작한 소독액을 미스트로 분무하여 공간이나 사물의 표면을 소독할 수 있는 기기이다. 플라즈마로 활성화한 공기를 이용해 살균 효과를 높인 것이 특징이다. 임태호 교수는 단순히 연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2018년 특수목적법인 형태로 실험실 벤처기업 ㈜코드스테리를 창업했다.

의학과 임태호 교수(한양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의학과 임태호 교수(한양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개발 제품으로 코로나19 확산 방지 도움

2019년 12월, 앞서 임태호 교수가 우려했던 대로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했다. 중국 우한 지역에서 처음 시작된 코로나19는 2020년에 이르러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 역시 그 충격파를 피하지 못하고 사회 전체가 코로나19 이슈로 몸살을 앓게 됐다. 임 교수는 연구에 착수하며 품었던 희망대로, 연구 성과를 통해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힘을 보탰다. 그가 개발한 플라크린 기기와 소독액은 국내 공인기관으로부터 코로나바이러스 살균 성능을 인증받았고, 미국 FDA와 유럽 CE 등의 승인을 획득했다.

지난해 7월 임 교수는 ㈜코드스테리의 이름으로 1억 원 상당의 플라크린 기기와 소독액을 한양대에 기부하기도 했다. 기부된 플라크린은 한양대학교병원(서울, 구리)과 한양대 올림픽체육관에 설치돼 코로나19 감염예방에 사용됐다.

임태호 교수는 과기부의 국민생활연구사업을 통해 플라크린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비디오 후두경인 ‘아이링고(i-LRYINGO)’의 개발도 주도했다. 관련 연구는 119 구급대원들이 응급환자의 기도 확보를 위해 튜브를 삽관할 때 기도와 식도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에서 시작됐다. 구급대원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연구에 착수, 5년의 개발 끝에 실험실 창업기업 AIMD를 통한 제품 양산을 앞두고 있다.

㈜코드스테리와 AIMD. 그가 실험실 창업기업을 2개나 경영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과기부는 국민생활연구사업 연구비 지원 조건으로 연구책임자가 실험실 창업기업을 설립하고 그 대표자로서 제품을 시장에 선보일 것을 포함했다. 플라크린과 아이링고 개발을 위해서는 창업기업 경영 또한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R&D 수행 시 시제품 제작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그것을 시장에 내놓고 실제 사용하게 하기까지는 힘든 단계가 많다”고 귀뜸했다.

임태호 교수는 ‘플라즈마 융합의학 연구센터’를 설립하여 융합연구를 통한 신 의료기기 개발도 이어가고 있다. 센터 소속 교수들의 전공은 의학과부터 기계공학부, 생명나노공학과를 비롯해 인문사회계열인 파이낸스 경영학과까지 다양하다. 다학제 연구는 어려움도 있지만 시너지도 크다. 전공에 따라 접근 방법이 달라 창의적인 솔루션들이 제시된다.

융합연구로 혁신적인 제품 개발

‘2020 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플라즈마 데오드란트 기기 ‘프래그런트(Pragrant)’의 모습
‘2020 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플라즈마 데오드란트 기기 ‘프래그런트(Pragrant)’의 모습

센터에서 개발한 플라즈마 데오드란트 기기 ‘프래그런트(Pragrant)’와 플라즈마 커튼 ‘플라카(PLACA)’는 지난해 1월에 열린 세계 최대 전자 정보기술 전시회 ‘2020 CES(Consumer Technology Show)’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프래그런트는 바이오-플라즈마와 플라즈마 메디컬 기술로 박테리아를 살균, 신체에서 나는 악취를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제품이다. 플라카는 플라즈마 기술을 이용해 세균이나 박테리아와 같은 유해 물질을 제거할 수 있도록 설계된 특수 커튼이다. 병원과 같이 감염원 관리에 예민한 곳에서 특히 유용하다.

의학과 의공학을 접목해 실제 보건의료 현장과 국민에게 필요한 연구를 진행해온 임태호 교수. 그는 지난해 11월, 국민생활연구 사업 분야 진흥에 이바지한 공로로 과기부 장관 표창을 받은 바있다. 임 교수는 융합연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국민 생활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제 연구 목표는 해외 제품보다 우월한 국산 제품을 반 이하의 가격으로 필요한 현장에 널리 보급하는 것입니다. 국내를 넘어 의료 환경이 열악한 나라, 국제 사회에도 기여하고픈 마음이고요. 국민생활연구사업을 통해 개발한 제품들이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면 좋겠어요. 이윤 창출보다는 사회 기여에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제가 성공 사례가 되어, 후배 연구자들에게 연구로 세상에 기여할 길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 본 기사는 2020년 12월 15일자 뉴스H 「'국민생활연구'로 과기정통부 장관상 수상한 임태호 교수」 기사를 HYPER 매거진 게재에 적합하도록 일부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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